도쿄, 시부야의 밤.
반짝이는 번잡함과 사람들의 욕망이 섞여 끊임없이 옥충색의 인간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 거리의 중심을 조금 떨어져, 도겐자카를 올라간 테넌트 빌딩의 지하에 「오즈키 -MITSUKI-」라는 클럽이 있다 . 음악은 물론 패션, 예술에도 민감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고 도쿄의 유스컬쳐의 새로운 진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에서 짝수 달의 주말에 「ALIEN SEX FRIENDS」라고 한다 이름 파티가 개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경묘 세련된 유머 , 어쩌면 경박하고 하세화한 농담처럼 취할 수 있는 그 색다른 파티명과는 달리, 「 ALIEN SEX FRIENDS」(이하 ASF)로 울리고 있는 음악은, 틀림없이 지금 시부야/도쿄/일본의 클럽 뮤직 씬의 첨단을 표현하고 있다.
시리어스한 테크노로부터 스트립 다운된 미니멀 하우스, 어퍼인 일렉트로로부터 힙한 2 Step까지, 밤새도록 다양한 댄스 뮤직이 접혀 오렌지의 네온 라이트에 요염하게 비추는 댄스 플로어. 거기에는 시부야의 밤의 인력에 몰려든 뮤직 러버와 클럽 댄서, 그리고 미확인 생물들의 열기가 소용돌이치며 파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춤을 추고 싶다는 욕구가 직접 반사되고 있다. 이 파티에 발을 들여 플로어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글래스를 한 손에 경쾌하게 농담을 날려 춤추면, 대략 「파티로 놀다」라고 하는 체험이 가지는 근원적인 즐거움, 놀라움, 기쁨의 모두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종이접기 첨부이다.
그런 ASF 장치는 10대 무렵부터 시부야와 니시 아자부의 거리에서 놀고 자라, DJ로서 함께 긴 캐리어를 걸으면서, 지금 국내외의 양질의 파티나 레이브에 많이 부킹되는 인기 DJ의 P-yan 과 Ryokei, 그리고 Nzz , Peta, Ryosuke Tsuchiya의 다섯 사람이다.
이번 TEQ 매거진에서는 그런 ASF로부터 레지던트 DJ의 P-yan, Ryokei와, Nzz의 3명을 게스트로 맞이해, ASF의 결성의 경위나, 3명의 음악 편력, 청소년기를 보낸 베를린에서의 추억 등 에 대해 얘기했다.
- 이번에는 시간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ASF로서 인터뷰를 받는 것은 처음이라고 묻었으므로, 우선은 ASF의 스타트의 경위와, 어떠한 형태로 MITSUKI로 파티를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들을 수 있습니까?
Nzz : 자신이 베를린으로 이사하기 직전에 MITSUKI가 오픈했는데, 로고나 인테리어를 다룬 것이 선배인 요시로군(YOSHIROTTEN)에서 그가 “새로 클럽을 만들었으니까 송별회 하지마”라고 말해 줘. 그래서 NY로부터, Madteo를 따로 파티한 것이 계기. 그 후도 도쿄 돌아가는 타이밍에 가끔 파티시켜주고 있어.
Ryokei : MITSUKI와의 만남은 그 Nzz의 Madteo 파티였다. 그 후, 나도 초대받아 DJ했지만, 초나이스 파티로. 그 무렵은 스스로 How High라고 파티를 하고 있었지만, 주재자로서 파티의 스타일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했던 시기로, 그 타이밍에 MITSUKI로 파티를 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어, Nzz에 상담했어 그렇죠.
P-yan : Madteo와 둘이서 하룻밤 DJ한 것이 MITSUKI의 부스에 처음이었던 날. 미츠키가 오픈해 2주차 금요일이었다. 나도 그동안 하고 있던 파티가 액티브가 아니게 된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반대로 혼자서 액티브하게 되어(웃음).
Nzz : 도쿄 살기 다시 하기로 하자 야마쨩(DJ의 YAMARCHY)이 레귤러 파티의 이야기를 줬어. 그래서 P-yan과 Ryokei에게 말을 걸어 ASF가 시작되었습니다.
P-yan : 첫 ASF는 2021년 여름이었다. Kotsu에게 DJ를 도와주세요. 확실히 북돋워줘.
Nzz : 그렇다면, "이거야, 여기야"라고, 되어버려서. 락 다운도 있어서 울창한 마음이었던 반동이라든지 여러가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한 에너지의 플로어가 되어서.
P-yan : SOMEWHERE IN TOKYO기, 위험했어! 2회째는 오츠키씨(Satoshi Otsuki)와 쓰루군의 라이브( LUVRAW) 가 게스트로 락 다운의 한여름에 촉촉하고, 3회째가 DJ Masda의 MITSUKI 첫 등장. 지금 생각하면 그 무렵은 ASF처럼 외계인 소리가 걸리는 파티는 MITSUKI에서 그 밖에 없었던 인상으로, 그것도 도와주고 모두 즐겨 주었던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ASF 초기에 만난 사람들은 매우 친해지고 지금도 ASF에서 잘 놀아주고 있어요.
Ryokei : MITSUKI에서 파티를 시작하게 되고 나서 우리를 알게 된 어린 아이들이, 「파티는 이런 일이야」라고 말해 신선하게 놀라 주었지. 자신들의 DJ의 스타일이나, 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Nzz : MITSUKI가 계기로 말하게 되어 연결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러 장르의 여러 DJ라든지 손님, 모두가 울타리를 넘어 사이좋게 된 것은, 정말로 MITSUKI의 덕분이군요. 기적의 자코라고 생각한다.
- MITSUKI라는 장소가 계기로 많은 연결이 생겨, 3명의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져 가고 있군요. 그 전에 원래 3 명이 친해지고 클럽에서 놀게 된 계기는 어땠습니까?
P-yan : 클럽에서 놀게 된 것은 Yellow에 다녔던 20세 정도였다. 당시 좋아하는 아이가 Yellow에서 놀고 있었고, 만나러 자주 다녔다. 새콤달콤한 추억(웃음)
Yellow로 하고 있던 FPM의 「 그란 투어리즘」 을 좋아하고 잘 놀러 가고 있었구나. 주말도 평일도 상관없이 다녔다. Yellow뿐만 아니라 Womb나 ageHa, 궤에 잘 갔다. 그 흐름으로 Francois K를 알고 빠져들면서, Yellow에서 지하상자의 매력과 하우스 뮤직의 재미에 완전 깨어났다. Yellow가 폐점하고, 그 터에 Eleven이 생겼지만, 그 시기 정도부터 Chaos라든지에서도 놀게 되어, 서서히 미니멀 하우스나 테크노가 재미있게 되어 있었지. 그렇게 되고 나서 처음 샀던 레코드는 Minibar에서 나온 Audio Warner의 ASAPEP 였던 아마, 미니멀하게 빠지는 계기의 한 장! 같아요. 이 근처에서 DJ 시작해서 Nzz를 만나거나 Junki와 놀거나 DJ 친구가 늘어나 파티도 해보거나 작은 상자에서 놀는 것도 즐거워지고 있어.
Nzz : 어렸을 때 밴드를 했는데, 그 여흥으로 DJ를 시작해 컨디션에 올라간 것이 시작으로(웃음). 그렇다면, 일렉트로가 오고 있어. Justice라든지 Ed Banger라든지 그런 거야. 그래서 나도 DEXPISTOLS 다녔다. 클럽 가게 되어, 스스로 파티도 하게 되어, Junki라든지 P-yan라든지 그것 정도로부터의 교제.
Ryokei와 처음 만난 것은 아마 Womb일 것이다. P-yan과 놀러 간 WOMB였지요. Sam Proper가 게스트의 Sterne라든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색한다) 와우, 이제 2010년이라도. Love Baby Love는 몸 안에서 대히트 튠이었다.
Ryokei : 내가 WOMB에서 일했을 무렵이지. 되돌아 보면, 지금의 음악의 연결이 여러가지 생긴 것은 WOMB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 크다.
내가 댄스 뮤직에 빠진 계기는 사이키였다. 확실히 18세 정도였을까. P-yan과 달리, 새콤달콤한 느낌이 아니고, 사이케의 페스티벌에서 쏟아져 춤추고 있었다(웃음) 그리고 Satoshi Tomiie라든지 Sasha, John Degweed 같은 깨끗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좋아하게 되어, WOMB에 들어갔다. 그 무렵에 세계 최고봉의 클럽을 보고 싶어지고, 이비자에게 혼자 배낭 짊어지고 여행했구나. Amnesia의 Cocoon 파티에 놀러 가고, 메인에서 Sven Vath, 서브에서 Marco Carola가 하고, 슈퍼 멋지다. 그때 나도 DJ가 된다고 결의했다. 그 무렵부터 15년 이상 지나고, 지금도 WOMB로 DJ 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은, 굉장히 감개 깊다.
Nzz : 3명이 갓츠리 함께 놀게 된 것은 역시 Unit/Saloon에서 했던 Cabaret이군요.
Ryokei : 그렇지?
P-yan : Cabaret은 모두 절대 갔다.
Nzz : 주말을 위해 살았다. (웃음)
Ryokei : 나는 모든 놀이를 거기서 배운 느낌. DJ Masda씨, Kabuto씨, Yone-ko씨, 멋진 어른들이 파티 하고, 본인들도 놀고 있는데 동경해. 그러니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흘러 당시의 자신들의 나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우리들이 Cabaret에서 놀고 있었던 것처럼, ASF에 와서 “파티에서 놀아 이렇게 즐거워요 라고 말해준 것은 당시 자신의 마음을 떠올리며 매우 기뻤다.
P-yan :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나는 자신들이 Cabaret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처럼, ASF에서 놀아 주는 아이들이, 그 영향으로 레코드로 DJ를 시작하거나 하는 것도 몹시 기쁘다. 우리 레코드를 사랑하고 (웃음)
- 소중한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레코드를 판매하는 TEQ로서도 젊은 DJ의 사람들이 ASF가 계기로 파티에서 놀게 되어, 바이널을 사서 플레이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기쁩니다. ASF 여러분은 파티의 본고장, 베를린에 이주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상에 빠져있는 사건도 있으면 꼭.
P-yan : 내가 베를린에 살았던 것은 2012년부터 1년간이었기 때문에, 또 12년도 전이다.
2012년은 Andrés의 New For U , Paranoid London의 Paris Dub 1이 나온 해로 베를린 생각나는 잊을 수 없는 곡이다. 리카르도의 앨범도 ( Ricardo Villalobos – Dependent And Happy ).
클럽이라면 Club der Visonare, Panorama Bar, Renate 등 여러가지 모두 돌진하고 있었다. 원래는 나고야의 조지군으로부터 베를린 즐겁다고 가르쳐 달라고. 원래 Womb에서 본 베를린 돌아가는 조지군의 DJ가 너무 위험해서・・・2011년에 1개월 정도일까? 요네씨(Yone-ko)가 투어하는 타이밍에 붙어 갔는데, 그것이 즐겁고 즐겁고, 초기의 Cab Drivers가 5유로라든가로 파거나 어디 가도 모르는 레코드 투성이로 천국, Hardwax에서 베이찬 시청하고 혼자 감극 있을 때 금전 등록기에 보통 Prosumer가 있거나, Renate로 부티 합니다 요네 씨라든지, 체재 짧으면서도 공기 맞고 있고 케밥 슈퍼 맛이라든지, 동경해 망상하고 있던 베를린에 마음껏 먹어. 그래서 돌아와서 1년간 아르바이트해 워홀리로 이주했어.
Ryokei : 나는 P-yan이 돌아온 후, 2013년부터 1년간 갔다. 베를린은 파티의 본고장이라는 것으로, 돈도 모이지 않고 일단 수중의 만표 붙잡고, 워홀리를 취해 비행기를 타었다. 도착하고 4일 만에 돈이 다 버렸지만. . .
Nzz : Ryokei가는 법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웃음)
Ryokei : 앞으로 가는 젊은이는 제대로 돈을 모아 가 주세요(웃음)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었다. 지금이라면 더 다른 방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곧바로 가서, 여러가지 것을 흡수하고 싶었다. 기세와 파워, 에너지가 열쇠였다. 베를린에서는 어쨌든 파티에서 놀고, 세 번의 밥보다 놀아 생활이었지!
P-yan : 항상 클럽에 있었어.
Ryokei : 내 베를린에서 파티의 추억이라고 하면 Panorama Bar에서 했던 Get Perlonized에 처음 갔을 때일까.
이런 멋진 곡이 계속 흐르고 있는 장소가 있다고 감동하고, 그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Zip이 즐겁게 여러 층을 돌면서 손님에게 말을 걸어 말하는 것을 보고, 좋은 파티라고 DJ도 손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놀다니, 굉장히 인상에 남아 있는 것.
Nzz : 그렇게 말하자면, P-yan이 베를린에서 돌아왔다. 파노라마 바에서 그대로 귀국해왔다든가. 진지해. 티셔츠가있어 (웃음)
P-yan : 너 그대로 친가 따라 돌아와 어머니의 오뎅 함께 먹었지 (웃음) 여러 나라의 사람이 베를린의 거리에 와서 놀고 있었고, 주위는 같은 나이 정도의 내일의 예정이 없는 사람 우리들만으로(웃음) 그렇게 재미있고 계속 놀아요. 마츠짱(DJ의 Shake M)도 룸 공유하고 옆에 있었고. 당시는 물가도 굉장히 저렴했고, 파티의 입구도 5유로라든지으로 넣어, 클럽에 계속 있을 수 있고. 상당히 닫히지 않고 클럽이 비어 있기 때문에 영업 시간이 연결되어 버려서. 버컨의 아이에게 「그렇게까지 있어~~」라고 말해져서 한 번 돌아갈까, 같다. 사가이 집 (베를린의 친가)에 돌아가서 밥 먹게 해줘.
Ryokei : 평일부터 릴리스도 하고 있는 유명한 DJ가, 매일 어딘가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Bihn도 당시는 Margaret Dygas와 레귤러로 Club der Visonare에서 파티를 하기도 했다.
P-yan : Binh씨의 Club der Visonare의 noon 잘 갔다. 아직 전혀 세계적으로는 유명해지기 전이었지. Binh가 DJ해도 플로어에 사람이 없다든가 있었고. 도 평일의 오후라든지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베를린의 귀가 비친 사람들은 모두 Binh를 이미 알고 있었고, 당시의 Zip이 제일 귀여웠던 것이 Binh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금의 활약은 Zip은 기쁘겠지.
Ryokei : Binh는 그 후 Zip의 Perlon에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P-yan : 우리들이 있었을 무렵은 미니멀 하우스가 전성기인지 조금 후쪽으로, Perlon의 영향을 받지 않은 미니멀 하우스의 라벨은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주위의 친구의 레코드 가방에도 「이거!」라고 하는 PERLON이 반드시 들어가 있었던 것이군요.
베를린에서 가장 좋아했던 파티는 나도 Ryokei도 절대로 파노라마(Panorama Bar)의 Get Perlonized군요! 매월 절대 놀러 갔어. 완전 헤드!
레지던트의 Zip의 DJ는, 보러 갈 때마다 스페셜이지만, 언제나 전혀 다른 김으로 하는 거야. 계속 하드한 테크노로 달리거나, 스피커가 폭발할 것 같은 볼륨으로 어시드 하우스 투성이의 시간도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하메가 계속해서 계속되더라도 어쨌든 위험한 시간도 있고, 거기에 모두 붙어 가고 DJ 도 응하고, 잘 말할 수 없지만 Zip의 파노의 DJ는 언제나 플로어가 마법에 달려 있었다. 이 체험은 자신들의 DJ나 파티감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료케이가 말한 것과 함께, 손님도 DJ도 같은 느낌이 들고 놀고, 매월 초Perlonized 하고 있었다.
- 베를린에서의 날들은 '놀기'가 생활의 중심이었지요. 거기서 각각이 감동하고 배운 것이 원체험이 되어, 여러분의 파티에 대한 자세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ASF에 놀러 간 적이 있는 사람은 모두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P-yan 씨는 귀국 후에 Nzz 씨와 Ryokei 씨는 스스로, 각각 새롭게 파티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귀국 후에는 어떻게 활동되고 있었습니까?
P-yan : 나는 돌아온 뒤 Nzz들과 했던 OSUSHI DISCO라는 파티에 다시 한번 조인했다. 에노시마 OPPA-LA에서 AKUFEN의 HORROR INC. 명의를 게스트로 불렀을 때일까.
Nzz : OSUSHI DISCO의 초기는 신주쿠의 club WIRE에서 개최하고 있었고, 거기서 Yone-ko씨나 LUVRAW씨를 게스트로 부르기도 했다. 이어 WOMB에서 출장 파티와 같은 형태로도 개최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 Oath(현 Redbar)로 장소를 옮겨 레귤러 파티가 된 것 같다. 어쩌면. Oath에서 처음부터, Yasu와 Nehan, Iori Wakasa가 하고 있던 Be Your Freak는 파티와 합체해, Artemis가 되었다. Lowtec, Vincent Lemieux, Sammy Dee, Jan Krueger 등 유럽에서 초대하여 파티를 계속했지만 그때는 Artemis에서 수십만엔의 적자가 나오거나 파티가 끝나면 멤버 모두 머리를 안고 (웃음)
P-yan : 언제나 적자였어요 (웃음) 매번인데, 왠지 다음은 적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돈을 빌려 반복 (웃음)
Nzz : Nehan은 아직 다리를 향해 잘 수 없어.
Ryokei : 지금 생각하면 정말 엉망이지 (웃음) 나도 베를린에서 귀국 후 곧바로 자신의 파티 How High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WOMB에서 Kabuto씨와 Yasu군을 게스트로 불러. Kabuto 씨와 처음 얽힌 것은 그때야. 그런 다음 장소를 Circus Tokyo로 옮기고 Oslo 레이블의 Nekes와 Birds Making Machine도 손님에게 불렀습니다. 나도 해외에서 DJ를 부르는 데 돈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파티 자체는 적자였다 (웃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고, 싫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yan : 나도 바로 그랬지. 비록 수십만엔의 적자가 되어도, 그것은 결국 돈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지불하면 좋을 뿐이라고 느꼈다. 모두 와서 즐겨주고 있었고,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고, 자신도 매우 즐거웠고.
그 후, P-yan씨와 Ryokei씨는 서로를 파티에 북킹해, 절기 琢磨하면서 DJ로서의 커리어를 쌓아 올려, 처음의 MITSUKI에서의 ASF 결성으로 연결해 간다. 다음 번은 ASF의 지금까지의 파티의 움직임에 대해서나 2023년에 시동한 라벨 ASF RECS에 대해서 등, 현재 여러분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묻겠습니다.
※기사 내의 ASF 파티의 사진은 Peta 씨로부터 소재 제공 받았습니다.
ASF (P-YAN + Ryokei)
Alien Sex Friends aka P-YAN + Ryokei. 시부야 『오즈키 -MITSUKI-』에서 짝수 달에 개최되고 있는 Alien Sex Friends의 레지던트 DJs.
2000년대 베를린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퍼진 미니멀+딥하우스 씬에서 큰 영향을 받아 도쿄에서 활동한 뒤 각각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2021년에, Alien Sex Friends를 시작해 세계적인 조류를 의식하면서도, 쇼츠키 -MITSUKI-'에 모이는 뮤직 러버즈&클럽 댄서즈&미확인 생물들과 함께 독자적인 사운드와 파티 스타일을 만들어 밤 밤 거리의 일각 온도를 올리고 있다. 2023년부터 바이널 라벨 <ASFRECS>를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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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 : TEQ MAGAZINE
텍스트 : Takashi Himeoka